문유석 판사님의 [개인주의자 선언]이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인간의 감성적 직관적 측면은 거대한 코끼리와 같고 이성적 측면은 거기에 올라탄 작은 기수와 같다는 겁니다. 그래서 진행 방향과 관련해서 코끼리와 기수의 의견이 불일치하면 언제나 코끼리가 이깁니다. 이성적인 기수가 제발 하지 말라고 뜯어 말리는 일을 코끼리는 선입견에 따라 조건반사적으로 저지르기 때문입니다. 이건 의식의 영역이 아닙니다. 알고는 있지만 의식하지는 못하고 있는 무의식의 영역. 인간의 무의식은 이렇게나 힘이 셉니다.


머리로는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들이 참 많습니다. 새벽에 집에 오면 언제나 햄버거를 하나씩 손에 들고 옵니다. 그렇게 배가 고픈 것도 아닌데 습관처럼 그렇게 햄버거를 사옵니다. 머리 속으로는 야식은 안 된다, 먹는 그대로 살로 갈 것이 분명하다 생각하지만 몸은 오늘도 맥도날드를 향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걸 멈추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마음이 그렇게 움직인다면 그건 마음이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는 뜻일 겁니다. 매일같이 새벽에 햄버거를 사왔던 것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죠. 늦은 시간 아무도 없는 방으로 돌아가는 길. 곁에 누가 없이 혼자 방에 있으면 외롭고 쓸쓸하니까요. 혼자 햄버거를 먹으면서 헛헛한 마음을 달래고 싶어서 그랬던 게 아닐까 이제와 생각해 봅니다. 


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 속 한태주 반장은 마음이 아닌 머리로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감성적, 직관적 판단은 믿지 않습니다. 믿는 건 오직 증거뿐. 언제나 자신이 옳은 줄만 알고 다른 사람을 믿어 본 적이 없습니다. 드라마 초반 한태주 반장은 절대로 웃지 않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진지하고 이성적으로 그 사건을 분석하고 판단할 뿐입니다. 1988년으로 넘어온 이후에도 태주는 언제나 어떻게 하면 다시 현실로 돌아갈 수 있을지 궁리만 합니다. 강력 3반이라는 사람들을 보지 못하고 사건만 잘 해결하면 다시 현실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거죠.


하지만 일은 생각대로 풀리지 않습니다. 사건을 해결하고 또 해결해도 현실로 돌아갈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언뜻 들리는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의 대화가 들립니다. 그리고 자기가 이대로 영영 무의식 속에서 살게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죠. 현실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은 어느 순간부터 끊임없이 한태주 반장을 괴롭히죠. 그런데 괴로워하는 한태주 반장을 보고 윤나영 순경은 말합니다.


반장님 눈이 아닌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세요. 그게 진실이에요.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요.”


마음의 소리. 한태주 반장의 마음속 코끼리. 아마 한태주 반장은 이 전까지 자기 마음 속에 코끼리가 살고 있다는 걸 전혀 모르고 살았을 겁니다. 1988년에 와서야 처음으로 느낀 겁니다. 내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그리고 한태주 반장은 강력3반 사람들을 봅니다. 과학적이지도 않고 괴팍하고 우악스럽지만 범인을 잡고자 하는 의지만큼은 모두 같습니다. 무심한 듯 해도 한태주 반장을 끔찍하게 챙기는 강력 3반 사람들.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 그래서 마음이 쓰이는 사람들.


한태주 반장은 그렇게 점점 얼굴에 표정을 찾아갑니다. 어울리지 않게 장난을 치기도 하고. 강력 3반이 위기에 처했을 때 한 몸 던져 그들을 구하러 가기도 합니다. 1988년이라는 한태주 반장의 무의식은 결국 한태주 반장의 마음 속 코끼리를 보여줍니다. 누군가를 믿고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렇게 서로 웃고 떠들고 관계를 맺으면서 행복할 수 있다면. 한태주 반장 마음 속 코끼리는 그렇게 1988, 인성시 서부경찰서 강력 3반을 향해 가고 있던 게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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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준범준


윤양, 미스윤, 윤마담 아니면 어이. 편하신대로 부르세요

이름이 없어요?”

“…윤나영이요

고마워요 윤나영 순경


처음이었습니다. 윤나영 순경을 윤나영 순경이라고 불러준 사람은 한태주 반장이 처음입니다. 윤나영 순경은 그 간단한 말 한 마디에 감동 받습니다. 혼자 입으로 윤나영 순경이라는 말을 되뇌면서 말이죠


1988, 경찰서에서 여경의 역할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커피를 타고 쌍화차를 타고 수사에는 끼워주지도 않습니다. 형사들이 수사를 나가면 혼자 경찰서를 지키는 게 일상입니다. 그래도 윤나영 순경은 항상 수첩에 무언가를 적고 있습니다. 형사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자기 나름대로의 수사를 펼쳐 나갑니다. 심리학 전공을 살려 혼자 범인의 심리를 추리해나가는 윤나영 순경. 윤순경은 여경이라고 무시당하는 와중에서도 혼자 그 시대에는 단어조차 없었던 프로파일링을 하고 있었습니다.


2018년에서 1988년으로 온 형사. 누구도 믿지 않고 증거만을 믿는 냉혈한 형사 한태주 반장부터 1988년의 우악스럽고 괴팍하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강동철 계장까지. 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모두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수사물에서 어디선가 한 번쯤은 봤을 법한 조금은 익숙한 캐릭터들입니다. 하지만 윤나영 순경이라는 캐릭터는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1988년 그 당시 여경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프로파일링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는 윤나영 순경의 모습은 그 어떤 수사물에서도 나오지 않았던 [라이프 온 마스]만의 매력입니다.


윤나영 순경은 평소에는 숫기 없고 수줍음 많은 성격이지만 수사에 있어서 만큼은 적극적입니다. 수사가 한계에 부딪쳤을 때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내는 건 언제나 윤나영 순경의 몫입니다. 잠입수사에도 강합니다. 윤순경은 부녀자를 대상으로 한 신용카드 강도를 잡을 때에도, 룸싸롱 아가씨로 변장해 범인을 잡아야 할 때도 절대로 몸을 아끼지 않습니다. 가장 멋진 건 윤나영 순경이 몸싸움에서도 언제나 범인을 압도한다는 점입니다. 달리기는 물론이고 업어치기로 범인을 순식간에 제압해버립니다.


무엇보다도 윤나영 순경을 연기하는 배우 고아성씨의 연기력이 대단합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연기하기 어려웠을 캐릭터라고 생각합니다. 한태주 반장, 강동철 계장처럼 정해진 이미지가 있는 캐릭터가 아닙니다. 하지만 윤순경 특유의 색깔은 분명하게 존재합니다. 기죽은 듯 하지만 조용히 할말은 다 하는 캐릭터. 톤이 조금이라도 어색했다면 밉상으로 보이거나 아무 색깔이 없는 캐릭터가 되었을 겁니다. 배우 고아성씨는 시선의 머뭇거림으로, 약간 떠 있는 대사 톤으로 이 특징을 완벽하게 표현해냅니다. 정말 1988년 윤나영이라는 순경이 있었다면 이렇게 말하고 행동했을 것 같다 싶을 정도입니다.


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 여러모로 인상적인 캐릭터가 많았던 드라마지만 윤순경은 유독 마음에 남습니다.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것 같고 그냥 다 잘됐으면 좋겠고. 멋진 경찰이 되어 대한민국 최초의 프로파일러로 역사에 남는 인물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아니. 역사에 남지 않아도 좋으니 그냥 윤순경이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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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준범준

좋은 드라마는 어떤 드라마일까요.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걸 보여주는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일 까요. 저는 그 답이 드라마 [아는 와이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집, 보육, 일 때문입니다. 집값은 천정 부지로 올라 서울에 내 몸뚱이 하나 누일 원룸 하나를 사기도 버거운 현실입니다. 살만한 집들은 다 억이 넘는데 월급은 그대로라면 어떻게 결혼을 할 만큼의 돈을 모을 수 있을까요? 또 아이가 생기면 키우기는 오죽 힘듭니까. 애는 혼자 크는 것도 아닌 데 대출이자와 생활비를 갚으려면 맞벌이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애를 안전하게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 합니다.


경력단절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이는 혼자 크는 게 아닙니다. 옆에서 돌봐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상황에서 엄마들이 직장을 그만두라는 압박을 받습니다. 그렇게 아이비리그를 나와서 전문직 하던 친구들도 열에 아홉은 커리어를 포기하고 집에서 애를 키우게 됩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는데도 결국 경력 단절을 겪게 되는 것이죠.


드라마 [아는 와이프]에는 이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습니다. 30-40대 젊은 부부들이 힘든 현실 속에서 결혼을 안 했다면,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그래서 나의 커리어를 계속 이어 갔다면 하는 상상. 드라마에, 아니 그 중 특히 서우진이라는 캐릭터 속에는 그런 모든 환상이 완벽하게 담겨 있습니다.


차주혁이 과거를 바꾸고 다시 만난 서우진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이전에는 파마머리에 화장도 하지 않고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성질 더러운 아줌마였다면 다시 만난 차우진은 지나치게 매력적입니다. 시원시원하고 털털한 성격, 한 가정을 책임지면서 회사에서도 맡은 일을 척척 해내는 슈퍼우먼 서우진. 가정환경이나 다른 상황은 크게 달라진 게 없습니다. 다만 다른 하나가 있다면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았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이 판타지에 열광합니다. 과거와 대비되는 서우진이라는 캐릭터. 맡은 일을 시원시원하게 처리하고 뭐든 주체적으로 판단하는 서우진이라는 캐릭터는 육아에 찌들어 망가졌던 과거 모습과 대비되어 강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줍니다.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저게 나의 모습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상상을 하며 사람들은 통쾌함을 느끼는 겁니다.


차주혁은 다시 서우진과 사랑에 빠집니다. 그리고 과거에 그런 선택을 한 자신을 후회합니다. 나는 그저 내 아내를 괴물이라고만 생각했지 어떻게 괴물이 되었는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겁니다. 돈을 조금 더 번다는 핑계로 육아를 전부 아내에게 맡겼습니다. 친정 아버지 기일에도 일을 핑계로 몇 년 째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혁은 우진의 어머니가 치매 증상이 있었다는 걸 과거를 바꾸고 나서야 알게 됩니다. 이 모든 것들이 우진을 외롭게 했고 우진은 그렇게 변해간 겁니다.


후회하는 주혁의 모습은 이 드라마의 또 하나의 재미 포인트입니다. 완벽해 보였던 첫사랑도 막상 결혼을 해보고 같이 살아보니까 그 단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재벌집 아내라 돈 걱정 없이 살지만 아내는 모든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시댁 식구들은 없이 사는 사람이라고 무시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또 경제권을 아내가 전부 갖고 있으니 아내의 모든 결정에 복종해야 합니다. 주혁은 이런 결혼 생활에 점점 염증을 느낍니다.


아내를 그 지경으로 외롭게 만들어 놓고 자기만 좋자고 지금의 와이프를 버리고 재벌 집 딸 첫사랑을 와이프로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염증을 느끼다 결국 다시 만난 원래 와이프와 사랑에 빠진다는 것. 얼마나 고소합니까?


사람들은 또 어떤 이야기를 보고 싶어할 까요. 평생을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을 문제 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건 계속 바뀔 테니까 저 역시도 언제나 눈을 크게 뜨고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지켜봐야겠죠. 참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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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준범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