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치

영화 노트 2018.09.19 15:48


모든 이야기가 컴퓨터 화면에서 진행됩니다. 일상적으로 접하는 인터넷 창 속, 그러니까 페이스북 인터페이스나 영상통화 화면 안에서만 사람들은 등장합니다. 회상을 할 때도, 생각을 정리할 때도, 아이디어를 얻을 때도 영화 속 사람들은 컴퓨터를 이용해 움직이고 소통하고 정보를 얻습니다.


처음엔 솔직히 답답했습니다. 영화관 화면을 가득 채우는 컴퓨터 화면이 왠지 모르게 싫었습니다. 연극을 볼 때도 천장이 낮은 무대는 싫어하니까 그거랑 비슷한 맥락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시야가 좁다는 느낌, 그래서 눈을 둘 곳이 없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탁 트인 화면이 주는 시원한 느낌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30분 후 영화에 대한 제 인상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보다 더 재미있을 수가 없더군요. 탄탄한 이야기와 끊임없이 등장하는 복선과 떡밥 회수에 2시간에 걸친 러닝타임동안 정말 눈을 떼지 못하고 봤습니다. 굉장히 속도감 있게 이야기가 진행되는 데 이해하는 데 무리가 가는 부분이 전혀 없었습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마지막 떡밥이 회수 되는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날 정도로 소름끼칩니다. 반전을 이야기 하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여기까지만 말하겠습니다.


영화와는 별개로 이런 상상을 해봤습니다. 내가 지금 실종이 된다면, 그리고 그 단서가 내 핸드폰, 페이스북, SNS기록뿐이라면 어땠을까요? 나는 발견될 수 있었을까요? 아무래도 부모님이 나이가 있으셔서 저한테 바로 적용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페이스북이 뭔지도 제대로 모르시는 분들입니다. 존 조처럼 능숙하게 컴퓨터를 이용해 단서를 찾기엔 한계가 있으시겠죠.


그래도 부모님과 저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영화에서 실종된 딸의 아버지로 나오는 존 조는 딸에 대해 전부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알고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딸이 실종된 순간 경찰이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딸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다면 전부 말해달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 아버지는 딸의 친한 친구 한 명도 제대로 말할 수 없습니다. 딸이 평소에 어디에 가 있는지 학교가 끝나면 주로 뭘 하는 지, 뭐에 관심이 많은지 아버지는 딸에 대해 아무 것도 알고 있는 게 없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저희 아버지 역시도 그렇지 않을까요? 제가 어떤 사람인지 묻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실 것 같습니다. 평소 그런 대화를 잘 안합니다. 저에 대해 관심이 없으셔서 그런 걸까요, 제가 그런 관심을 바라지 않아서 그런 걸까요. 언제부턴가 사적인 일을 잘 말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누구를 만났는지 뭘 했는지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관계라는 건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건데 말이죠.


굳이 굳이 왜 그럴까 이유를 생각해보면. 항상 제 쪽에서 먼저 입을 다무는 것 같습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부모님에게 했을 때 부모님의 반응을 쉽게 예측할 수 있으니까요. 결과는 언제나 제가 혼이 나는 방향으로 대화가 진행되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순간 정신차려보면 혼이 나고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너는 그러면 안 된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 저렇게 살아야 한다. 분명 삶에 도움이 되는 말인 건 알지만, 그리고 좋은 뜻으로 하신 말씀이라는 것도 알지만, 모든 대화가 그렇게 진행이 된다면 그런 관계는 싫습니다. 그럴거면 말을 아예 안 해버리는 편을 선택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분들도 많겠죠. 영화를 보고 조금 씁쓸해졌습니다. 저런 사고 없이는 시시콜콜한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없는 부모와 자식의 사이라는 게.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내 얘기처럼 공감할 수 있다는 게 말입니다. 


부모가 된다면 자녀들의 지금의 모습에 좀 더 관심을 가지는 부모가 되고 싶습니다. 시시콜콜하게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다 할 수 있는 그런 부모가 되고 싶습니다. 그런 관계가 좋습니다. 자식들이 지금의 나처럼 생각하고 나를 피한다면 그건 너무 속상할 것 같아요. 아이들이 가장 먼저 만나는 다 들어주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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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준범준

인셉션

영화 노트 2018.09.12 01:51


어마어마한 영화였습니다. 왜 이 영화를 이제야 봤나 싶을 정도로 흡입력 있는 영화였습니다. 처음에는 솔직히 잘 이해가 안 갔습니다. 고백하자면 초반에는 집중을 잘 못하고 왔다 갔다 하면서 보고 다른 인터넷 하면서 보고 심지어 자소서도 조금 쓰면서 봤습니다. 밤 늦은 시간이라 이거 중간에 끊고 자야겠는데 생각도 잠깐 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저의 오만이었습니다. 이 영화를 도중에 끊는 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작전이 시작되더니 휘몰아치는 서사가 펼쳐집니다. 꿈속의 꿈, 또 꿈 속의 꿈, 그리고 거기에 다시 꿈을 꾸는데 그게 하나의 사건으로 엮여있고. 거참 이건 뭐 도중에 끊고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원칙으로는 꿈에서 죽으면 그대로 깨어나는 것이 정상입니다. 하지만 약을 통해 잠이 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현실에서의 5분은 꿈 속에서의 1시간. 약을 통해 잠이 들면 몸이 자극에 반응하지 못해 그 정신은 영원히 꿈 속에 갇혀버립니다. 깨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킥. 현실에서 잠을 자고 있는 내가 뒤로 넘어가거나 어딘가로 떨어질 때. 그러니까 을 해줘야만 잠에서 깨어날 수 있습니다. 콥은 작전을 시작할 때 팀원들에게 전부 약을 먹였습니다. 그러니까 팀원들은 누구라도 꿈 속에서 죽으면 영원히 꿈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하루를 내내 잠이 들었다면 그 시간은 꿈 속에서 30년이 될지 40년이 될지 모른다는 겁니다.


각본과 연출은 주인공들을 차근차근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 부칩니다. 설정 하나하나가 정말 찰지게 주인공들을 괴롭힙니다. 보다 보면 작가가 참 못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 재벌 아들의 꿈이라 경계심이 많아 무의식 자체가 무장하고 있다는 설정부터가 어마어마합니다 작전을 시작하자 꿈 속에서 총을 든 무의식들이 주인공들을 공격합니다. 그래서 작가와 감독은 기어코 작전을 시작하자마자 하루였던 제한 시간을 한 시간으로 줄여버립니다. 주인공 중 한 명이 총에 맞아서 꿈 속 에서 그가 죽기 전에 모든 작전을 끝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루에서 한 시간으로. 제가 콥이었다면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입니다.


마지막 킥은 정말 압권입니다. 꿈 속의 꿈, 꿈 속의 꿈 그리고 또 꿈 속의 꿈에서 주인공들은 마지막 단 한번의 킥을 준비합니다. 그 킥이 실패하면 이들은 절대 현실로 돌아올 수 없습니다. 꿈 속의 꿈, 또 꿈 속의 꿈으로 들어갈 때 마다, 시간은 다르게 흐르고 누군가의 꿈 속에서 주인공들은 저마다의 킥을 준비합니다. 첫 번째 꿈속 주인공들을 태운 자동차가 강물로 뛰어들면서 두 번째 꿈 속의 세상의 중력이 사라지는 상황은 정말 작가가 천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참신합니다. 중력이 사라지면 어디선가 떨어지는 것이 불가능 하기 때문에 단순 폭파 말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바로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됩니다. 이 영화가 대단한 이유는 두 시간 반이라는 기나긴 러닝타임 내내 긴장감을 놓을 수 없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 주인공들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작전을 무사히 마치고 현실로 돌아올 수 있을까? 각본과 연출은 이 긴장감을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기 직전까지 끌고 갑니다.


게다가 그 긴장감의 끝에는 주인공 콥의 트라우마가 엮여 있습니다. 콥의 무의식을 헤집고 다니는 아내의 기억. 콥은 아내에게 죄책감을 갖고 있습니다. 그녀가 자기 때문에 죽였다고 생각하는 콥. 하지만 작전의 성공을 위해서 콥은 아내를 쏴야만 합니다. 꿈 속에 들어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작전을 방해하는 콥의 아내. 과연 그가 아내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내고 아내의 망령을 이겨낼 수 있는지 영화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이 미스테리를 갖고 갑니다.


꿈과 현실. 꿈을 통해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상상. 그리고 꿈 속의 꿈, 그리고 그 꿈 속의 꿈까지. 꿈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시청각적인 상상이 담겨있는 영화입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상상력은 정말 대단하다는 걸. 게다가 그는 상상력을 뒷받침 해줄 놀라운 디테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간만에 또 보고 싶은 영화가 하나 더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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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준범준


관계를 잃고 싶지 않아서. 그 사람과의 관계가 틀어지는 게 싫어서. 차마 말할 수 없는 사랑이 있습니다. 속으로 가슴앓이를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내 마음을 고백했을 때 혹시나 상대방이 거절한다면. 그래서 다시는 볼 수 없는 어색한 사이가 된다면. 그 사실이 더 끔찍합니다. 그래서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을 숨깁니다. 친구라고 말하면 계속 곁에 있을 수 있으니까요. 아무렇지 않은 척 같이 웃고 떠들고 장난을 치지만 그 눈빛의 끝엔 왠지 모를 애틋함이 있습니다. 아무리 숨겨도 숨겨지지 않는 게 눈빛이니까요.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에도 그런 사랑이 나옵니다. 푸세와 테이스티. 둘은 교도소 안의 누구나 아는 단짝입니다. 일거수일투족 모든 것을 털어놓는 친구. 항상 옆에 붙어서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깔깔대면서 웃고 있습니다. 둘은 서로를 진심으로 아낍니다. 하지만 푸세의 마음과 테이스티의 마음은 조금 다릅니다. 이성애자인 테이스티에게 푸세는 소중한 친구입니다. 푸세와의 시간이 즐겁고 행복하지만 사랑보다는 우정에 가까운 감정이죠. 푸세는 테이스티를 사랑합니다. 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테이스티를 바라보는 푸세의 눈에는 사랑이 뚝뚝 흘러 넘칩니다.


테이스티가 가석방되는 날 푸세는 교도소 창문 밖에서 테이스티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며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테이스티가 가석방 대상자 후보로 선정되는 순간부터 자기 일처럼 기뻐했던 푸세 입니다. 가석방 인터뷰를 같이 준비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게 좋겠다 저렇게 말 하는 게 좋겠다며 누구보다도 열심히 테이스티를 돕는 푸세. 테이스티가 가석방되어 떠난다면 더 이상 테이스티를 보지 못할 지도 모릅니다. 푸세는 그 사실이 슬프지만 그래도 행복합니다. 테이스티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테이스티를 향한 푸세의 사랑은 온전히 주는 사랑입니다. 돌려 받지 않아도 좋습니다. 테이스티가 진심으로 행복해진다면 더 나은 삶을 살게 된다면 그걸로 충분한 사랑. 테이스티를 바라보는 푸세의 눈에는 그 마음이 가득 담겨있습니다. 그래서 푸세는 가석방 된지 이 주일 만에 교도소로 다시 돌아온 테이스티에게 더 화가 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교도소 말고 더 좋은 곳에서, 더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랐는데 그러지 못한 테이스티가 미웠던 겁니다. 가석방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테이스티에게 들었던 앞으로의 삶에 대한 기대들. 그걸 다 이루며 살기를 바랬는데. 테이스티는 이 거지 같은 교도소에 다시 들어왔으니까요.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나는 여전히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쉽게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치지 않을까요? 주면 준 만큼 받기를 바라는 게 사람 마음이니까요. 그런데 푸세의 눈빛을 보면 모든 것이 이해가 갑니다. 그 사람과의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소중해서.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그 마음이 보여서 푸세를 응원하게 됩니다. 둘의 사랑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이런 단순한 응원은 아닙니다. 이루어지지 않는 일방통행 사랑이 애틋하고 예뻐서 영원히 그렇게 지치지 않고 테이스티를 사랑해 주었으면 하는 이기적인 응원.


사랑이란 뭘까요. 상대방이 행복한 걸 보기만 해도 내가 더 기쁜 그 어떤 감정이 사랑이 아닐까요. 그 사람이 웃으면 나도 좋고 그 사람이 울면 나도 슬픈 그런 감정. 푸세의 눈에 담긴 그 마음을 보면서 사랑이 뭔지 다시 한 번 배웁니다. 시즌2가 되면서 테이스티가 푸세와 거리를 두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테이스티를 친 딸처럼 키워 주었던 비가 있죠. 비는 끊임없이 푸세와 테이스티 사이를 이간질 합니다. 그래도 푸세는 여전히 테이스티만 바라봅니다. 그 모습이 또 그렇게 마음이 아픕니다. 우리 푸세가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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